Gongha2009. 5. 28. 21:10





'사람 사는 세상'에 올라온 위의 동영상은 지난 2007년 12월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당신과 퇴임 직전 마지막 송년회를 준비하면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당신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접할 때마다 마음 한켠이 아려옴은 이제 어쩔 수 없는 병이 되어버린 듯 합니다.
49재가 끝나고 난 후 시간이 흘러 1주년이 되면 또 다시 아려올 것이고, 2주년 3주년...그렇게 해를 거듭할수록 당신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질 겁니다.

지난 토요일부터 제 일상은 무언가를 하면서도 제 머릿속에선 단 한번도 당신 생각을 놓아본 적이 없습니다.
왜 그리도 빨리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까?
사진속 손녀 서은양도 당신을 저리 좋아하는데...

저는 당신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길 기도했으며, 대선 승리를 위해 주변 지인들을 설득하며 투표에 참여케 한 것 말고는 사실 특별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 저는 정치와는 먼 일상을 추구했습니다.

이미 제가 아니어도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대한민국은 잘 돌아가고 있었으니까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자유와 상식이 통하는 대한민국이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만큼 당신의 직무수행 능력은 탁월하며 월등한 것이었던 셈이죠.

그 땐 그토록 당연한 것이라 여겼던 자유의 만끽이 요즘에는 왜 이리도 갈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었을 때...또 다시 당신의 본래의 자리를 되찾아 드리기 위해 나름 노력했고...
당신이 다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된 이후에는 또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와서 민주주의를 만끽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당신의 업적을 폄훼했지만 저는 그 이유라는 것이 당신의 발목잡기에 혈안이 된 보수세력의 선동질에 넘어간 이들의 어리석음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노사모 웹사이트 회원가입은 되어 있으나 모임에 한번 참여해본 적 없고,
행사에 참여해본 적 없는 불량회원입니다. 노하우도 그저 노사모 일꾼을 뽑는 투표가 있을 때, 혹은 당신과 관련하여 좀 더 심도있는 정보가 필요할 때나 찾곤 했습니다.
당신을 지지함에 있어 집단적이기보다는 저 혼자로 족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남들 희망돼지저금통 꽉꽉 채워 보낼 때 저는 채워놓은 돈 너무 적어 온라인 계좌번호로 두어 차례 입금했던 것이 그나마 당신의 국민을 위해 펼치는 정치라는 것을 맛보는데 덜 미안했다고나 할까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신에게 더 큰 힘을 실어주지 못한 제 자신의 못남이 한스럽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이제 제2의 노무현을 기대하며 그에게는 당신에게 보냈던 열정에 플러스 알파를 더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야만 우리 대한민국이 좀 더 살기좋은 나라, 희망이 가득한 나라로 바뀔 듯 합니다.

당신이 떠나신 후 많은 의혹이 남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노짱님 당신의 서거가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의에 의한 것이든..
이제 편안히 쉬시고, 당신을 위한 불량 불교도인 저의 백팔배가 효험이 있다면 당신은 분명 극락세계에 가실 겁니다.
49재까지 때때로 시간내어 당신을 위한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왼손잡이이고 불교와 연이 있으시고 무엇보다도 서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서민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음에 기뻤습니다.
자꾸만 당신과의 공통점을 찾으려 애쓰는 저를 보며 돌아가신 양반 미련하게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손녀를 뒤에 태우고 자전거 페달을 밟으시는 뒷모습...
손녀 엉덩이 아플까봐 수건을 깔아주시는 배려를 잊지 않으신 할아버지..
이젠 정말 이러한 소소한 일상의 모습을 볼 수 없음에 안타깝습니다.

회자정리를 말하지만 그 뒷면에는 거자필반이 있다는 불교에서의 가르침을 저는 믿습니다.

당신은 떠났지만 떠나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손에 쥔 자들은 그 권력이 평생 갈 것으로 착각합니다. 오늘의 대한민국 모습입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오 권불십년이라 했습니다. 더 이상 우리 국민은 어리석지 않으며, 속닥속닥 날로 해처먹는 권세가들을 믿지 않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역주의 타파와 민주주의 신장을 위해 노력한 당신의 가르침이었을테니까요.

노무현 대통령 생전 손녀와 함께 한 감동영상



어리석은 자들은 당신을 사지로 내몰았지만 훗날 역사는 분명 당신을 훌륭한 대통령이었다고 기록할 겁니다.
미완의 군주 정조와 당신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을 미련한 권세가들은 모르는가 봅니다.

당신이 강조했던 몇가지 의미있는 가치들...
원칙과 상식, 신뢰의 정치
개혁과 민주주의 신장을 통한 역사의 진보와 사회통합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소통과 참여


그네들의 속좁은 정치는 아직까지도 이미 사자가 된 당신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강조했던 가치들에 대해선 살짝 흉내만 낼 뿐 어떻게 하면 국민들의 시끄러운 입을 막을 것인가만 연구하여 실천에 옮기는 또라이 집단에 불과합니다. 
시청광장을 풀지 않는 것 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모사를 허용치 않는 것 하며, 국정 전반에 책임있는 여당의 원내대표라는 사람의 입에서 당신의 추모열기를 두려워하며 국민들을 예비 시위자(범법자)로 몰고 있는 발언 등이 그 증거라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영화 <왕의 남자>에 등장했던 육갑이는 재주라도 잘 넘고 국민들에게 웃음이라도 선사했죠.
국민들로부터 얻은 바보라는 별칭을 무척 좋아했던 당신은 죽어서까지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데..
현 권세가들은 정말이지 육갑을 떨어요. 이런 바보들 정말 없습니다. 자신들의 현재의 위치를 전혀 파악하지도 못하고 그저 그들 자신의 안위만 챙기는 모습에 이제는 진저리가 쳐집니다. 



이제 내일 당신을 마지막으로 배웅하러 광화문에 가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당신에 대한 글을 남길 때는 희망 가득한 그런 글을 남기겠습니다.



지켜주지 못해 용서를 구합니다.
2004년부터 책 표지 뒷면에 언제나 적어뒀던 말 '그에게 간다. 기필코!!'
살아 생전에 지키지 못해 더욱 더 죄송합니다.



내가 사랑했던 노짱 안녕...


Posted by 공하™
Study2009. 5. 26. 01:53



노무현 75년 사법고시합격수기


...
"과정도 하나의 직업인 것이다"





1.머리에

지나간 일은 언제나 아름답게만 보인다지요? 산꼭대기에서는 힘겹게 올라온 가파른 산길마저도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듯이 말입니다. 또 승자의 과거는 그것이 자서전이든 타인의 작품이든 가끔 신화적으로 수식되어 있음을 봅니다.

사법시험의 합격, 이것이 긴 여정에서 하나의 중간 목적지에 불과하지만 하나의 성취와 조그마한 승리로 평가될 수도 있기에, 막상 합격기라는 것을 쓰려 하니 자칫 어떤 승리감에 도취되거나 과거를 돌아보는 낭만적인 기분에 도취되어 힘겹고 괴로웠던 긴 수험 과정의 체험을 스스로 미화시켜 얘기하는 잘못을 범하게 될까 여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졸 합격자라는 다소 특이한 제 입장이 독학도들에게 어떤 관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둔한 솜씨나마 될 수 있는 한 사실대로 기억을 더듬고 그때의 생생한 감정들을 살려서 몇 자 쓰고자 합니다.


2. 동기 - 꿈을 키우던 시절

나는 경남 진영이라는 읍에서 약 10리나 떨어진 산골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위로는 형님이 두 분으로, 큰형님은 부산 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고등고시를 준비하였으나, 본래 가난한 살림에 벅찬 대학 공부 때문에 가세는 더욱 기울어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쯤 끝내 응시도 해보지 못한 채 그만두고 말았다.

당시 나는 형님을 따라 마을 뒤에 있는 봉화사라는 절에 가서 그곳에서 고시 공부를 하는 형님 친구들의 법이론이나 시국에 대한 토론을 자주 듣곤 했으며, 또 형님은 자신의 좌절에서 오는 울적한 심정을 털어놓기를 좋아했던 모양으로 가끔 상기된 어조로 나에게 여러 가지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물론 나는 그때의 얘기들이 너무 어려워서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이 많았으나, 그들의 엄숙한 표정과 격한 어조의 토론은 만만한 젊음의 패기와 이상을, 그리고 격렬한 논쟁의 뒤에 주고받는 소탈한 웃음은 사나이들의 인간미와 호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느꼈고, 이것들이 고시 학도들의 속성이요 또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으로까지 생각했다. 결국 이런 분위기는 나에게 고시를 해보겠다는 막연한 꿈을 갖게 해주었다.


그러나 살림은 더욱 기울어 작은형님은 학업을 중단했다. 부모님의 노동 능력은 차츰 줄어갔고, 마침내 최후의 명줄로 남아 있던 조그만 과수원마저 빚에 쪼들려 처분해야 했다.

나는 3학년이 되면서 일찌감치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5급 공무원 시험을 거쳐 독학으로 고등고시에까지 밀고 나가 보겠다는 결심으로 옛날 형님께서 보시던 누렇게 바랜 [법제 대의]와 [헌법의 기초 이론(유진오)]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해 10월에는 일자리를 찾아 나갔던 형님께서 돌아와 내가 하는 꼴을 보고 크게 나무라시며 진학을 권하셨다. 나도 가정 사정을 들어 고집을 부려 보긴 했으나 끝내 강권에 못 이겨 부산 상고에 장학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예순이 넘으신 부모님들의 생활은 아무런 토지의 근거도 없이 자신들의 노동으로 해결하시도록 내버려 둔 채 작은형님이 어렵고 힘든 직장을 전전하며 벌은 돈으로 내 숙식비를 부담해야 했으니, 대학 진학은 아예 엄두도 내어 보지도 못하고 취직반에 들어갔다.

그래도 역시 막연하게나마 길러 오던 고시에의 꿈을 버릴 수는 없었던지 3학년 말 농협에 취직시험을 치른 후 발표도 나기 전에 65년도 11월호 [고시계]를 한 권 샀다. 고시의 냄새를 알기 위하여.....


3. 출범, 그리고 표류

농협에의 낙방에 이어 개인 회사에 취직했으나 생각보다 급료가 박했고 근무 시간이 많았던 것은 고시로 향한 출범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야산 돌밭을 개간하여 심은 고구마와 영세민 취로 사업장에서 내주는 밀가루로 연명하시는 부모님들의 실망을 모른 체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한 달 반의 급료 6천원으로 몇 권의 책을 사고 마을 건너편 산기슭에 토담집을 손수 지어 '마옥당(磨玉堂)'이라 이름 붙인 후, '사법 및 행 정 요원 예비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당시에는 학력 제한이 있었다). 책값을 벌겠다고 울산 한국비료 공장 건설 공사장에 막노동을 하러 갔다가 이빨이 3개나 부러지고 턱이 찢어지는 불운을 겪으면서도, 용케 11월에는 제7회 예시에 합격하였다.

4개월 정도의 준비로 예시에 합격하는 행운과 함께 이제까지의 나의 처절한 투쟁은 막을 내렸다. 나의 예시 합격에 자극받아 큰형님은 67년에, 작은형님은 68년에 각각 5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67년에는 법률 서적을 살 형편이 못되어 예비 시험 과목을 새로 공부하고 있다가 68년에는 군에 입대했다. 군에 있는 동안에도 공부를 해 보려고 애썼으나 영어 단어 하나 암기를 못하고 3년을 표류하고 말았다.


4. 열풍에 돛을 달고 - 그리고 좌초

71년 제대를 하고 집에 오니 집안 사정은 상당히 호전되어 있었다. 4월부터 옛날의 '마옥당'을 수리하여 공부를 시작, 5월 2일에 3급 1차에 합격, 그리고 사법시험으로 전환. 처음 법률 책을 대하니 다소 흥분되기도 했으나 과연 이 어려운 것을 해낼 수 있을지 더럭 겁부터 났다. 그러나 소설을 읽듯이 마구 읽었다. 생각보다 쉬웠다. 겉만 슬슬 핥으니 그럴 수밖에……. 전 과목을 무질서하게 읽었다. 행정법과 상법이 좀 어려운 듯했다. 민법을 모르니 그럴 수 밖에……. 소송법은 전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실체법을 전혀 모르니 그럴 수밖에……. 4개월에 걸쳐 오리무중을 헤매면서 전 과목 3회독을 마쳤다.

「고시계」를 66년도부터 소급해서 샀다. 그러나 합격기 말고는 아무 것도 읽을 수 없었다. 그 동안의 체험과「고시계」합격기에서 읽은 것을 정리하여 얻은 것은 책을 읽는 순서 정도였다. 이리하여 민법을 먼저 읽고 상법과 행정법에 들어가고 실체법을 먼저 읽고 소송법에 들어 간다는 순서를 정하여 9월부터 시작했다. 새로 읽으니 과거의 3회독은 간 곳 없고 전혀 새로 읽는 기분이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다시 어려워졌다.

그러던 중 10월에 14회 공고가 났다. 외면하려 했으나 자꾸만 들떴고 마침내는 고시 사상 최단기 기록을 목표로 하여 무작정 덤볐다. 문제 집을 샀다. 1차의 합격은 나의 이러한 만용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젠 문제집마저도 내 나름대로 밑줄을 긋고 그 부분만 골라 읽었다. 8개월 정도의 준비로 2차 시험에 응했다.

시험장에서 고향의 중학교 후배를 만났다. 사법시험 준비는 나보다 훨씬 선배였다. 나의 공부 기간을 듣고는 "전 과목을 한 번 다 보지도 못했겠네요?" 했다. 어리석게도 나는 자신이 무시당하는 기분에 저으기 분개하면서 우습게 받아 넘겼다. "두고 보라지……. " 정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을 모르는 막강한 뱃심이었다. 이런 뱃심으로 시험에 응했다. 기막히게 더 잘 썼다. 내가 아는 건 다 썼고 또 아는 건 그 뿐이었으며 집에 와서 책을 대조해 보지도 않았으니, 기막히게 잘 썼다고 생각할 수밖에……. 점수는 50점 얼마였다.

뒤에 읽어보니 문제집에 밑줄을 그어 두었던 부분이 모두 엉터리였다. 다른 색깔로 새로 밑줄을 고쳐야 할 형편이었다.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응시자를 젖히고(?) 과락 없이 300명 선 안에 들어갔으니 다음에는 틀림없을 거라고 또 한 번 낙관했다.

그러나 발표 후 5-6개월을 이유 없이 허송했다. 제대 후 공부도 시작하기 전부터 마을 처녀에게 마음을 뺏기기 시작하여 상대방의 단호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열을 올리게 되고 8개월에 걸쳐 집요하게 추근거려 1차 시험 직전에야 겨우 처녀의 마음을 함락시키고는 안도했는데, 이제 그녀가 결혼 적령을 넘었다는 사실과 고시와 연애는 양립할 수 없다는 중론 사이에서 그녀와 나는 고민의 연쇄반응을 일으켰고, 또 이틀이 멀다 하고 만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애정의 열도에 비례하여 공부를 위한 시간에의 집착이 강하여 심리적 갈등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9월에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장유암이라는 절에 들어갔다. 국사의 추가로 부담이 늘었지만 시험이 연기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 '수석 합격'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열심히 공부를 했다.

73년 1월에는 예년의 시험 대신에 그녀와 결혼했고 5월에는 아들도 낳았으나 나는 여전히 절에서 계속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아! 그런데…… 글쎄 정말 이럴 수가! 그렇게 끔찍이도 나를 아껴주시며 자신의 못 다한 소망을 나에게 걸어 꿈을 키워 주시던 큰형님이 5월 14일 교통사고로 저 세상으로 떠나 버리셨다. 한 줌 잿가루로 화해 버린 형님의 유해를 고향에 묻고 절로 올라 올 때는 길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이제부터 전혀 공부도 되지 않았다. 단지 타성에 의하여 책장을 넘기고 있는 동안에도 마음은 삶과 죽음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생각들과 고시와 출세에 대한 회의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결론은 하나, 형님의 꿈 그리고 나의 꿈, 어떻든 고시는 필연적이었다. 15회 시험까지 남은 기간은 40여일 뿐, 차츰 초조해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책을 읽기만 하면 가슴이 울렁거리며 답답해지는 알지 못할 병에 걸리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시험을 한 달 앞두고 보따리를 싸 들고 집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아직 산고가 풀리지 않아 부자유스러운 아내와 핏덩이 신걸이, 자식을 잃은 부모님의 비탄……. 공부가 될 리 없으니 병은 점점 더해지고……. 수석 합격이라는 화려한 표어와는 달리 응시조차 포기하고 싶은 것을 부모님의 시선이 두려워 마지 못해 상경하였으나, 시험 첫 날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목구멍에 무엇이 치밀어 올라 우유와 계란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그래도 기를 쓰고 책을 볼라치면 몸에서 식은 땀이 배어 나왔다.

「고시계」의 통계란에 따르면 결과는 90위 정도, 정리만 잘하면…… 하는 자신을 얻은 셈이었다.


5. 새로운 좌표 - 직업 의식

그러나 좀 쉬어야 했다. 책을 잡기만 하면 예의 증세가 나를 괴롭혔다. 고시를 그만둘까도 싶었다. 학교 성적이 우수했다는 사실이 반드시 고시를 해야 할 필연적 이유로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도 되었고,법을 공부하면서 차츰 정의의 이념을 배워 가는 동안 '고시=권력=출세'라는 과거에 내가 생각했던 등식이 우스운 것임을 느끼게 될 무렵 형님의 뜻 아닌 타계는 예시 과목의 철학 개론을 공부하면서부터 어렴풋하게나마 생각해 오던 삶의 의미를 보다 깊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맹목적 출세주의와 ' 그 수단으로서의 고시'라는 과거의 생각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았다.

그러나 상고를 졸업한지 너무 오래되어 새로운 진로를 찾기는 어렵고 하여 고시를 그만두지는 못했다. 다만 이제는 고시 아니면 파멸이라는 배수의 진은 거두어 버리고, 하나의 직업인이 자기의 생각에 충실히 종사하듯이 고시 공부도 평범한 생활의 일부로 생각하려 했다. '수석 합격'이라는 표어 대신에 '천직 =소명'이라 써붙이고, 숙소를 마옥당에서 집으로 철수하여 직장에 출퇴근하는 기분으로 낮에는 마옥당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집에 와서 여유가 있을 때만 공부하기로 하였다.

아기가 울면 달래기도 하고 기저귀도 갈아 채우고 밤이 늦도록 아내와 정담을 나누며 잠을 덜 자면 이튿날 낮잠을 잤다. 그러나 가슴과 목의 증세는 쉽게 낫질 않아 16회 시험까지는 부담 없이 쉬었다. 16회 시험도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응시한 정도였고 성적은 15회보다 내려 130위 안팎으로 생각되었다. 17회 준비 1년간은 정말 순조로웠다. 절에 있을 때 만들었던 독서대의 실용 신안 특허 출원 관계로 9-10월에 조금 쉰 것 말고는 가금 아내와의 대판으로 선풍기 목이 부러지거나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활극이 연출되기도 하는 가운데에도 예전과 같이 재미있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10월 하순부터는 풀었던 긴장을 바짝 조여 이때부터는 아내가 들 건너 마옥당까지 점심을 날라다 주었고 잠은 여전히 집에서 잤으나 신걸이가 잠들기 전에는 우리 방에 못 오게 하고 책을 보았다.

그러나 17회 때에도 역시 정리가 다 되지는 않았다. 단지 다른 어느 때보다 정리 기간이 착실했으니 훨씬 낫겠지……. 집을 나서면서 아내에게 "신문 기자들이 수석 합격자 인터뷰하러 올 테니 당신도 피력할 소감 한 마디 준비해 두지 그래."하고 허풍을 쳤다. 건강은 좋았고 시험은 순조로웠다. 집에 와서도 역시 출발 전의 호언장담을 되풀이했다. 3월 27일 아침 먹고는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없어 진작부터 낮잠에 들어갔다. 꿈결에 "무현아! 무현아!"하는 친구의 떨리는 목소리, 그도 뒷말을 잇지 못했고 더 들을 필요도 없이 아내는 내 무릎에 엎드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형님! 지하에서도 신문을 보십니까? 아버지 어머니도 형님 생각에 자꾸만 우십니다."


6. 더하고 싶은 이야기

공부 방법, 책의 선택, 공부 장소, 독서 방법 등에 관한 문제는 각각 제 것이겠지요. 그래도 일반론이 있다면 이미 많은 선배님들의 합격기가 말한 것과 나도 같습니다.

그래서 제 특이한 입장에 관한 것과 또 제가 따로 하고 싶은 얘기만 골라서 제 경험을 예로 들어 쓰렵니다. 다만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얘기하는 것은 객관성을 잃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됩니다마는, 어느 정도 참고는 되리라 믿습니다.


1) 독학에 대하여

응시자 중에 4년제는 물론 초급대학에도 안 간 사람들만을 독학도로 계산해도 그 수는 600명을 넘는데, 이 수는 서울대 출신 응시자 800명에 거의 육박하는 수임에도 합격자 수는 수년만에 하나씩 나올 뿐으로 도저히 비교가 안된다. 이런 점을 보면 대학교에는 꼭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주로 경제 사정과 연령이 문제인 것 같으나, 경제 문제라면 요즘 일부 사립 대학에서 고시반을 편성하여 학비는 물론 숙식 일체까지 밀어 준다고 하니 오히려 독학보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가벼울 것이다. 연령 문제도 생각 나름이 아닐까?


2) 그래도 구태여 독학을 하겠다면 독학도들의 고시 합격률이 지극히 저조한데 반하여 대학 출신자 중에는 법대 출신이 아니고도 고시에 합격하는 사람이 많고 17회에는 수석 합격자가 공대 출신이다. 이러한 결과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연유하는 것이겠으나 나는 이 점을 대학에서 얻게 되는 일반 교양 과정의 지식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과거 예비 고시에 합격한 후에도 법서를 살 형편이 못되어 군에 입대하기까지 1년간을 예시 과목의 책을 그대로 읽었고 이것이 제대 후 법서를 공부할 때 상당한 도움을 준 것 같았다. 이런 점에서 학력 제한이 철폐된 오늘의 제도보다 과거의 예비 시험 제도가 보다 합리적인 제도가 아닐까?

흔히 독학도들은 소위 공부 방법이나 수험 정보, 고시 기술론, 고시 분위기 등에 생소함을 걱정하게 되나 그런 점은 고시 잡지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수험 기간 중 많은 사람들과 많은 얘기들을 나누어 보았으나, 수험 잡지의 합격기나 좌담회, 통계 기타 안내편에 나오는 이상의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다.


3) 병역 문제

군에서 공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러나 어차피 가야 한다면 일찍 갔다 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현역 복무 중 가는 세월을 한없이 초조하게 생각했으나, 마치고 나니 부담이 없어 좋았고 또 졸병 생활 자체가 하나의 수업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수험 과정 중에 필요했던 끈기 있는 자세는 군에서 몸에 익힌 바 큰 것이었다.


4) 연애와 결혼

처음 8개월에 걸친 일방적 구애 작전은 시간과 정력의 손실이 너무 컸다. 그러나 일단 결혼한 후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아내의 세심한 배려는 말할 것도 없고 점심을 가지고 올 때면 언제나 따라오는 개구장이 신걸이의 재롱은 식사시간을 즐겁게 해 주었다. 붉은 낙조를 바라보며 집에 건너오면 또 반겨 주는 신걸이의 고사리 손이 하루의 긴장과 피로를 깨끗이 잊게 해 주어, 나는 침체기를 몰랐고 따로 휴식이나 기분 전환 거리가 필요 없었다.

애타는 애인들 있으면 결혼들 합시다.


5) 건강

절대적 조건임은 두말 할 것 없고 다만 공부로 오는 정신적 육체적 피로보다 초조, 불안 등의 심리적 파탄에서 오는 손실이 훨씬 더 심각하고 장기적인 것이다. '고시 아니면 파멸'이라는 생각이나 출세에의 지나친 집착, '최단기' '수석합격' 등의 욕심은 사람을 견딜 수 없이 초조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하나의 직업인이 성실하게 직장에 임하듯 수험 생활에 임했더니 장기에 걸쳐 장소를 옮기지도 않고 공백 기간도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바꾸고도 곧잘 대성하더라. 일정시까지 안되면 직업을 바꾸면 그만이다. 여하튼 다소간의 긴장은 필요하겠으나 지나친 긴장 불안 초조는 금물이다.

또 며칠을 허송했다 하여 갑자기 초조해지고 그를 보상하겠다고 급하게 열을 올리고 무리를 하는 것은 잇달아서 또다시 며칠의 침체와 시간의 낭비를 강요하는 결과가 되기 십상이다. 지나간 시간은 아무리 아까워도 깨끗이 잊는 것이 좋다. 장기전에서의 며칠의 허송은 그리 문제되 지 않는다. 나는 최종 정리 기간에도 부부 관계는 억지로 금욕하지는 않았다.

여하튼 나는 이런 느슨한 자세로 공부했다. 그러나 결코 남보다 노력을 덜하지는 않았다. 보통 10시간은 넘게 공부했고 일단 책상에 앉으면 무서운 집중력을 구사했다. 머리가 혼란해지고 잡념이 생길 때에는 책을 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안정이 되었다. 그러나 일단 책을 떠나면 고시는 깨끗이 잊었다. 이런 느슨하면서도 투철한 자세는 확고한 직업관에서 왔다고 생각되지만, 또 합격에의 신념으로 보완될 때 더욱 안정적이라 생각된다

 

 

[출처] http://www.cizel.co.kr/zeroboard/zboard.php?id=user_weeklyissu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306

 

Posted by 공하™
Gongha2009. 5. 25. 01:43

시간상으로 어제 24일 밤 10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각...
친하게 지내는 동생과 서울역 구 청사앞에 마련된 임시 분향소에 갔다.
생각과는 달리 그리 많은 이들이 조문하지는 않았다. 분향소가 마련되었다는 소식을 모르는 이들이 다수일 것이기에 이해되는 대목이다.
YTN에서 서울역 앞에 10시 반이후에 분향소가 마련된다는 뉴스 보도를 접한 동생의 전화가 없었다면 필자 역시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모두가 나의 일이 아니라는 듯 그렇게 무심하게 길거리를 오고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이들 중에도 조문에 참여하는 이들 또한 분명 있었다.
임시 분향소인지라 구색은 초라했지만 노짱에게 담배 한 개비 불 붙여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했기에 분향소를 찾았다.

국민장으로 봉화마을과 합의가 되어서 그런지 (謹)  故 노무현 前 대통령 국민장  (弔) 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서울역 구 역사 정문쪽에 새로이 분향소를 마련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었다.
오늘 필자가 조문한 그곳은 작업이 진행되는 바로 옆에 마련되어 전등도 없는 임시 분향소였다.



국화꽃 한 송이를 헌화하고 마련 되어있던 향을 피운 후 
필자가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여 놓았을 때는 이미 이제 막 놓인 듯 보이는 담배에서 연기를 피어 오르고 있었다. 다른 분들도 뉴스를 본 모양이다.
담배 불을 붙일 때 왠지 모를 서러움에 울컥했다.

영정사진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재배를 하고 난 후에야 잠시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을 바라볼 수 있었다.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킨 노짱님, 편안히 잠드십시오
어제, 오늘 하루가 무던히도 길었다.

동생에게서, 핸드폰을 꺼내 역사의 현장이라며 찍었던 사진을 건네받았다.
사진을 보면 불빛이 환한 것은 YTN 카메라의 조명때문이다.




[2009-05-27 추가글]

아래 사진은 2009-05-25 21:39에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
서울역 구청사 정문 앞에 마련된 정식 분향소 모습
불빛이 환해 영정 사진을 비롯한 국화꽃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2009-05-25 21:39


시간상으로 어제 26일 조계사에 다녀왔다.
국화 16송이를 사서 극락전에 헌화하고 108배를 했다.
3000배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으나 여러 정황이 그에 미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왕생극락을 기원한다.



2009-05-26 11:19


2009-05-26 12:24


2009-05-26 12:27


2009-05-26 12:28


2009-05-26 12:31


2009-05-26 12:37


2009-05-26 12:37


2009-05-26 12:40


2009-05-26 12:45


2009-05-26 12:55



서울역사 앞 정식분향소에는 전직 청와대 참모와 유시민 전 장관, 정세균 대표, 김유정 대변인 등의 모습이 보인다.


2009-05-26 17:58


2009-05-26 18:00

Posted by 공하™
Gongha2009. 5. 24. 18:56
Posted by 공하™
Gongha2009. 5. 24. 15:37

 






메말랐던 눈물샘에서 자꾸만 눈물이 쏟아집니다.
어제, 오늘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손에 아무 일도 잡히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셨습니까?


왜 못다한 과제를 저희들에게 떠넘기고 가셨습니까?
한편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당신의 그 무거운 짐을 함께 짊어지려 애쓰지 않았던 지난 날들을 반성합니다.


어제 오후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는 경찰들이 당신의 떠나가시는 길 마지막 인사 올리는 것마저 방해하고 있더군요. 순수 추모자와 불법 집회 시위자를 구별하기 어려워서 막고 있다며, 불법집회를 사전에 봉쇄한다는 어설픈 변명을 늘어놓던데...


당신을 추모하는 분향소를 전국 사찰에 만들고 조계사에서는 49재까지 챙겨준다는 대한불교 조계종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내일 조계사로 갈까 합니다.
당신을 위해 당신의 영정사진이 놓인 그곳에서 - 현 정권의 개가 되어 날뛰는 검찰, 경찰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 당신의 극락왕생을 기도하겠습니다.


< 그런사람 또 없습니다 >



당신을 사랑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동 시대를 살아갈 수 있었음에 무한한 영광이었습니다.
원망하지 말라는 당신의 말씀은 다시금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생전 모습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盧 전 대통령 측근들, 비통‥분노



현직 시절 노무현 前대통령의 유머


노무현
 


WE BELIEVE- 노무현 대통령 추모곡



걸어온 길  "시대는 단 한번도 나를 비켜가지 않았다."



<인터뷰> "대통령 한 사람 힘으로 역사발전하는 것 아니다."






내 인생의 유일한 대통령 노짱... 바보 노무현

왼손잡이에, 가난하여 대학 못나온 상고출신, 늘 편한 길 놔두고 고된 길 걸으며 주류에 속하지 못했던 나의 우상...
당신을 사랑합니다.


부디 편히 눈감으십시오.



 

Posted by 공하™
Gongha2009. 5. 23. 11:03

청소하고 있다가 친구 놈의 '야 노무현대통령 돌아가셨데 어떡하냐 ㅠㅠ' 라는 문자를 접했다.
야 무슨 헛소리냐 (만우절도 아닌데) 장난하지 마라고 얘기했더니,
지금 뉴스 속보로 나오고 있다고...
...





2009년 대한민국엔 암울한 그림자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한 인간을 존경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었는데...
노짱의 서거는 필자의 슬픔이기 이전에 온 국민에게 분노를 심어줄 수 있는 너무도 큰 사건이다.

평범한 이들을 범죄자로 만들고 평생 그들에게 잊지 못할 악몽을 던져주었던 군사독재 시절을 화려하게 연 쿠테타 세력의 수장들은 아직도 떵떵 거리며 잘 살고 있는데...
서민들을 위해 젊은 시절을 보낸 후 정치에 입문한 이후에도 많은 지지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옳다 생각하는 것은 하늘이 두쪽나도 옳다는 곧은 자세로 인해 대통령의 위치까지 오르셨던 분이....
민주화 운동의 전면에서 힘쓰셨던 분이...

아니 경호를 어찌 했기에...

실족사라는 사실은 도저히 믿을 수 없고...
오늘 2009년 5월 23일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내신 분이 자살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모습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라고 생각하니 마음 무겁다.
연예인들의 자살을 접하며 일반 국민들의 자살이 그 뒤를 따르고 있는 시점에서 전직 대통령이셨던 분의 자살이라니...

현 정권과 언론의 그 동안 계속된 흠집내기가 부른 참사가 아닐 수 없다.
자녀들에 대한 힘있는 자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유학보내려 생각했고, 그 유학생활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 부족해 빌린 돈을 마치 커다란 비리라도 저지른 것 마냥 엮어서 보도하고,

기필코 감방에 넣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온 국민에게 보여주었던 검찰들의 태도는 의구심이 아니 들 수 없게 했다.

현 정권에 대한 얘기는 더 해봐야 입만 아프니 제쳐두고,
오늘자 네이트 뉴스면에 보이는 연합뉴스의 기사를 접하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휘 선택에 있어 '서거'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도 않고 있는 모습은 영향력 있는 대한민국 언론의 현주소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연합뉴스에 전화해서 왜 '사망'이라는 어휘를 사용하느냐고 했더니 자신들의 홈페이지에는 '서거'라고 수정했으면 포털사이트에도 수정요청을 하고 있는데 아직 적용되지 않았다는 어설픈 변명만 늘어놓는다.
처음부터 '서거'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함에도 언론사로서의 자격이 의심스럽다.

노무현 전 대통령..
그토록 강조했던 도덕성의 타격으로 인한 자살...
이는 앞으로 많은 국민들을 거리로 불러올 것이며, 행동하게 만들 단초에 해당할 수 있어 그 파장은 더욱 크다고 생각된다.
2mb정권은 향후에 있을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과 대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곧 6월도 다가오는데...
이제 노짱은 6월 민주화운동 지지세력에 의해 민주화운동의 한 열사에 이름이 올려져 집회 때마다 등장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유서 전문




유서도 현 정권 입맛에 맞는 부분만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고 보도되지 않는 부분이 많고 유서가 진정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작성한 것인지 의문이다.
유서는 컴퓨터에 남아있었다고 한다.
판사와 변호사를 했던 인물이 유서를 남긴다면 당연 친필로 남겨야 한다는 기본 상식은 인지하고 있을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양보해서 이 부분 넘어간다해도...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바위에서 떨어진 후 동행했던 경호원이 산 아래로 내려와 차를 댄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업고 이동하여 차에 태운 후 병원에 도착하는데 소요된 모든 시간이 20분
이게 말이 되나??

'여네시대'님의 말처럼 경호원이 순간이동이라도 했나?



경찰의 5월 24일자 수사상황 종합발표에 의하면 15분 소요란다.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에 환멸을 느낀다.



사랑합니다.
당신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공하™
Blog2009. 5. 19. 01:02


구차하게 이런 저런 변명해대면서 국내에서 생활하기 어려운 자신의 처지를 누리꾼들 때문인양 언론을 이용하여 플레이 하지 말고...

그냥 알바짓 할만큼 했고 이제는 누리꾼들에게도 댓글에 대한 각성을 정부 의도대로 어느 정도 줄만큼 주었으니 나의 역할은 여기까지 인 듯 하다. 나는 더 이상 많은 누리꾼들에게 들통난 한국 사회에서 허수아비 소모품으로 살아가기 힘들다. 나는 미네르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까놓고 얘기하지 못할 거면 그냥 조용히 떠나라.

그대가 정녕 미네할배라면 그대의 이중적인 모습은 너무도 우습지 않은가?

적당할 때가 좋은 거다.
그대는 그냥 그렇게 살아라.
설마 가면무도회를 평생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인가?

영웅의 가면은 이제 제발 좀 벗어놓자.
왜 외국인들까지 속이려 하는가?
그대는 전 세계인을 속여야 속이 시원하겠는가?

그대에게서는 애민(愛民)정신을 찾아볼 수 없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대는 이미 미네할배가 아닌 것이다.
설령 그대가 100% 순수한 미네할배라 할지라도 이제는 아닌 것이다.
서민들을 위하고 국가를 걱정하던 예전의 모습과는 달리 나만이라도 살아야겠으니 다른 나라로 떠나야겠다는 어설픈 이기주의는 결코 많은 누리꾼들이 기억하는 애민과는 거리가 멀다.

선택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민 또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제발 가라.
언론들에게 자꾸 변명하는 그대의 모습 흘리지 말고 제발 조용히 떠나가라

그리고 다시 부탁하자.

이제 그만 그 화려한 가면도 벗어놓자.

훗날 그대는 그대의 자식에게 뭐라 말할 것인가?
'박대성이 미네르바이다' 라고 말할 자신있는가?

구차한 모습 보이지 말고 이왕 말 나온 김에 그대가 그토록 경멸하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영원히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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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하™
Gongha2009. 5. 15. 13:34

집앞에 꽤 큰 벚꽃나무가 한 그루 있다.
언제부터인가 봄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날은 더워지고 여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 문득 지난 4월에 찍었던 사진 파일을 정리하다가 블로그에 남겨본다.

중앙루터교회 앞에 있는 벚꽃나무, 그토록 화사했던 꽃잎들은 내년 봄을 기약하며 벚꽃나무는 현재 새파란 잎들로 그 꽃잎들을 대신하고 있다.




아래는 덤으로 4월 7일 남산 산책로의 모습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이 남산의 봄을 화사하고 풍요롭게 꾸며준다.
남산에 더 많은 소나무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곤 하는데...
서울시 예산이 그 비싼 소나무를 남산에 심기에는 아마도 버거울 듯 하다.
남산을 조깅하다보면 소나무 향이 유독 진하게 느껴지는 곳이 있다.

Posted by 공하™
Digital/Fun2009. 5. 14. 14:31
지난 화요일 황학동에 갈 일이 생겨 다녀왔다.

몇 년 만에 간 황학동의 모습은 예전과는 좀 다른 모습이라고나 할까..
청계천 도깨비시장이 없어지고 동대문 운동장으로 상점들이 옮겨갔다가 다시 현재의 풍물시장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황학동 풍물시장은 찾아간 날이 쉬는 날이었다. ㅠㅠ
하여 규모는 작지만 아쉬운대로 길 건너편의 벼룩시장으로 가봤다.

개인적으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러 갔던 것이 아니었음에도 몇 가지 물건을 구입해왔다.
그 중 하나는 삼성 뮤직 리모트 컨트롤러(AEP211RBK)
삼성 휴대폰(SPH-M4500)을 사용하는지라 리모트 컨트롤러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던 중이었던지라 별 망설임없이 한 눈에 들어왔다. 제품 테스트 결과 제대로 잘 작동되었다.


<모델명 : AEP211RBK>

요즘은 DMB 되는 휴대폰이 나오는지라 DMB 리모트 컨트롤러라 불리고 있는 제품들이 나오는 상황이고 필자의 휴대폰 역시 DMB 리모트 컨트롤러가 제 짝이지만 찾아간 그 날 보이지 않아서 아쉬운대로 그냥 위의 제품에 만족해야 했다.
가격은 다른 물건 구입하면서 깎은지라 공짜로 구입한 셈이다. 물건을 파는 곳마다 다르지만 그곳은 보통 2천원에 판매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위의 물건은 이곳 밖에는 안보였다.

참고로 아래 보이는 새 제품 DMB 리모트 컨트롤러의 경우 삼성전자 A/S센터에서 1,5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모델명 : AEP232RSK>


문제는 이 뮤직 리모트 컨트롤러가 10극이고 필자의 핸드폰은 20극이라는 사실...
젠더가 필요하다.
위의 제품(모델명 : AEP232RSK)은 20극이기 때문에 이 제품을 구입하면 고민이 해결되는 셈이다.
효용도를 생각한다면 가격도 그리 비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공짜로 구한 물건을 써보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드는지라 오기가 발동했다.

용산을 방문할 일이 있어 돌아다녀 봤는데 좌측처럼 생긴 깔끔하고 단순한 모양의 필자가 생각하는 모양의 젠더는 결국 구하지 못했다.
ㅠㅠ

모양은 다를지라도 같은 기능을 하는 젠더 역시 발견하지 못했다.

돌아와서 웹에서 검색해보니 젠더가 있긴 하다.
생각했던 모양의 작은 젠더가 아니고 배송비를 포함한 가격 또한 만만찮다.

아피스 멀티어댑터

하나쯤 있으면 나중에라도 여러모로 유용하게 사용할 것 같긴한데 제품의 길이가 너무 길어 바깥에서 움직이며 사용하기 불편해보인다.
이건 원래 생각했던 것이 아닌지라 구매하게 되면 엉뚱한 소비를 하는 꼴이 되는 거다.
차라리 15,000원 주고 규격에 맞는 제 짝을 사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 여겨진다.

있는 것을 활용하자는 주의인데...
그렇다고 내가 공대 출신도 아니기에 뜯어 고치는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민 좀 해봐야겠다.

최소한 90도로 꺾여 10극 이어폰이 꽂혀도 괜찮은데....



지마켓에서 1500여 종류의 젠더를 판매한다는 부품창고라는 곳도 둘러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여 문의 전화 해봤지만 역시 필자가 찾는 유형의 젠더는 취급하지 않았다.


참고로 아피스 멀티어댑터는 아래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벼룩시장을 둘러보다가 사고 싶은 중고 제품들이 몇 몇 보였다.
출시된 지 꽤 지났지만 출시 당시에는 간지 좔좔 흘렀을 Sony Cyber-shot DSC-M1은 10만원...
솔직히 제대로 작동만 되고 충전만 가능하다면 지름신이 강림했을 것이다.
2만원 한다는 리바이스 청바지, 여러 전자사전들과 메모리 용량이 작은 mp3p들도 눈에 띄었다.
pmp는 보지 못했다.
디지털 기기에 필이 꽂혀 자리를 뜨기 어려웠다.
LP판도 여기 저기 꽤 많이 보였고, 예전 소니 카세트, 여러 회사의 CD 플레이어를 비롯한 가전 기기들과 재봉틀까지도 정겹게 느껴지는 시장이었다.

길거리에서 행거에 진열된 옷들 중 눈에 띄는 제품이 하나 있었다.
바로 교련복

예전에 형이 교련복을 입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은 40대 혹은 50대가 되었을 법한 서라벌고 3학년 김영단님의 옷이다.
사진 찍는데 얼굴에 화상의 흔적이 심하신 주인 아저씨께서 필자를 마구 혼내셨다.
얼토당토 하지 않은 이유를 대시면서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파는 옷들이 사진으로 찍혀서 홍보해주면 좋지 뭐
외부로 사진 찍혀 유출되면 안된다는 이상한 말씀을 하신다. 다른 분들은 사진 찍어도 뭐라하지 않으시던데...




삼성 뮤직 리모트 컨트롤러를 장만한 상점에 고양이 한 마리가 높이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 위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요 녀석 다른 곳들 구경하고 다시 와보니 아래와 같이 박스 안에서 자고 있다. ㅋㅋ

너무 평온해보이는 양이였다.


 

10개 들어있는 약과를 사서 함께 간 일행과 나눠 먹고나니 갈증이 느껴졌다.
날도 더워 화채를 사먹었다.
천원하는데 그릇이 사발면 그릇보다 약간 작아 보였다.
시원한 수박이 입안에서 스르르 녹았다.

아쉽게 사진은 찍지 못했다.
시장은 사람들로 활기 넘쳤고 서민들을 위한 중고 시장의 묘미를 만끽하고 돌아왔다.
문득 짱님이 떠오르기도 했다.

다음에는 시간내어 풍물시장에 꼭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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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하™
Gongha2009. 5. 13. 00:02



돌아가신 친지 분들이 간혹 꿈속에 등장하곤 한다.
살아계신 부모님께서 등장할 때도 있다.
그런데 이 꿈이 특별하게 좋고 나쁨으로 명쾌하게 나누기 힘들 때가 있다.
이 경우 꿈해몽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몰라 무조건 복권을 사곤 한다.
물론 필자 나름대로의 꿈해몽이긴 하지만 좋은 꿈이었다면 행운이 올 것이고, 나쁜 꿈이었다면 액땜을 대신하여 부적을 샀다고 생각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이런 행동을 한다. 아직까지는 현실에서 그리 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므로 이러한 행동은 꽤 오래토록 지속될 듯 하다.


주변에서 대통령과 관련된 꿈을 꾸면 봉건시대 임금님 꿈을 꾼 것과 같은 것이므로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 하여 복권을 사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필자는 다른 많은 통치자들과는 달리 노무현 전 대통령을 꿈속에서 자주 뵙곤 한다.
대선 후보 경선 때도 꿈에 등장해서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의미있는 한마디를 던지고 사라졌는데 대선 후보로 딱 결정되어, 당시 노짱을 지지하던 필자는 노짱이 꿈에 나타나면 길몽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복권은 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복권이 주는 희망과 노짱의 대선 경선 승리를 맞바꾸고 싶지 않았던 까닭이다.




TV-CF 1편 <눈물>(2002.11.27)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
[동영상 출처] mms://vod.president.go.kr/cwd/021127-cf.wmv




노무현 대통령 취임연설
(2003.02.25)
취임연설에서의 당당하던 모습
[동영상 출처] mms://mhroh.hvod.nefficient.co.kr/mhroh/cwd/030225-inaugural.wmv


대통령 당선 이후 재임기간에도 꿈에서 뵈었다.
솔직히 대선이 끝난 이후에는 정치에 대한 관심이 대선 기간과 비교해봤을 때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참여하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그 이전 대통령들에 비해 훨씬 성숙한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대통령을 욕해도 누구하나 터치하지 않는, 우리사회의 권위주의가 많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탄핵이 있던 즈음해서 또 한번 꿈속에서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 필자는 또 다시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탄핵이라는 부끄러운 일이 발생한 것이라는 생각에 그 즈음 많은 국민들과 같은 마음으로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가지며 웹에도 글을 남기는 등 많은 노력을 했었다.
꽤 오랜 기간동안 권한이 정지되어 있었지만 노짱은 다시 최고 통수권자로 복귀했고 국민들은 안정을 찾아갔으며 필자 또한 정치권에 대한 과열된 관심을 접고 일상으로 되돌아가 평범한 생활을 했다.

그리고 퇴임 즈음해서 한번 더 꿈을 꿨고, 이때는 복권도 샀다. 결과는 꽝이었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했다. '퇴임하여 힘이 없어서 일까?' ㅎㅎㅎ


오늘 아침(2009.05.12) 너무도 생생한 상태에서 꿈을 깼다.
노짱과 유시민 전 장관, 그리고 필자가 아는 지인과 넷이서 거나하게 취하도록 술을 마신 후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필자의 느낌은 좋았다. 너무도 밝고 호탕하게 웃으시며 자신있는 목소리로 우렁차게 얘기하시는 모습과 함께 한 이들 모두가 즐거워 하는 그 꿈속 상황을 잊을 수가 없다.
 
하여 이번 검찰 조사와 관련하여 좋은 신호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아님 현실을 잊기 위한 노짱의 노력이었을까?

이번에 필자의 꿈이 후자라면 필자는 노짱님을 다시는 꿈에 모시고 싶지 않다.
또다시 꽝이면 정말 안된다. 국민들 들고 일어날 지 모른다.

워낙에 도덕적인 가치를 중시했고,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이 도덕적인 순결만큼은 마지노선으로 인식되는 노짱인지라 지금까지의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타격을 입었다.

제발 백색 부패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해본다.
그렇다고 해서 노짱의 도덕적인 가치마저 예전 그대로인 상태로 인정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이미 말했듯이 충분한 도덕적 치명타를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계속 지지한다.


아래 보이는 동영상을 보면 노짱이 살아온 삶의 파편들이 담겨있다.
정치인이 되기 이전부터 옳다 생각하는 일에는 고집스럽게 지켜나가는 행동은 많은 약자들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고 그의 이러한 모습은 훗날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 광주대회에서의 돌풍을 몰고오기에 충분했다.

아직까지 노짱처럼 권위를 탈피하고 민주주의 기본 가치를 존중했던 대한민국 대통령을 만나보지 못한 것 같다.
노짱을 비롯한 가족들의 검찰 수사에 대한 국민 여론이 검찰의 주장보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더 호의적인 이유는 아마도 이러한 면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퇴임이후 고향으로 귀향한 최초의 대통령으로 기록되며 노짱의 고향 마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로 자리 매김을 했다.

필자도 이벤트에 참여하고 당첨되어 구매해서 맛본 바 있는 봉하오리쌀이라는 친환경 농법을 활용한 쌀 수확은 우리 농촌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생태 하천을 비롯한 농촌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많은 자원봉사자들을 봉하마을로 발걸음하게 하였고 대단히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요즘 MB 정권에서 추진하는 하천 정비사업과 비교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과연 자연 환경과 조화되는 상생을 위한 노력을 전직 대통령인 노짱과 현직 대통령인 MB 중 누가 더 많이 해왔을까?

서민들을 위한 복지예산과 관련해서는 입만 아프다.
대폭 축소시킨 복지예산으로 인해 방과후 학습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저소득층 자녀들이 갈 곳이 없어져 방황해야 하는 상황을 보도한 시사 교양 프로그램은 노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경제 위기 대처에서도 확연하게 차이나고, 세계 강국과의 국제 외교에 있어서는 속된 표현으로 쪽팔리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할만 하다.
법과 원칙을 노짱과 MB 모두 강조했고 중시했다.
하지만 한 쪽은 국민들이 욕하도록 내버려뒀고, 한 쪽은 그 욕을 하지 못하도록 입을 막는데 급급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국제사회에 북한의 인권에 대해 말하면서 정작 대한민국의 인권을 말할 때는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인권을 무시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등 어느 한 분야 참여정부와 비교하여 MB 정부가 더 낫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찾지 못하겠다.

자주국방을 강조하며 국산 군사 무기 개발에 공을 들였던 노짱과 다시금 미국의 우산 아래로 들어가려는 MB

좌파정권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 이념 갈등만이 존재한다던 참여정부와 달리 뉴라이트를 비롯한 몇몇 보수 수구세력 외의 모든 국민을 적으로 만들어버린 MB의 실용정부...
과연 실용을 추구한 정부는 어느 정부인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대통령 측근을 비롯한 친인척 비리와 관련해서도 이미 MB 정부는 많은 타격을 받았으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리곤 노짱에게만 도덕이라는 잣대를 들이댄다. 권력이 집중되는 대통령제라고는 하지만 국민들을 향한 너무도 안이한 생각과 대처는 기가 막힌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라고 수입해놓고선 청와대에서 미국산 쇠고기 요리를 먹었다는 뉴스 기사 한 번 접해보지 못했다.

아이들의 건강에 해가 될 수도 있는 광우병 의심이 해소되지 않은 쇠고기를 먹이지 못하겠으니 수입을 재고해달라는 유모차 부대에게 배후가 누구냐고 묻는 정권, 언론장악 위해 KBS, YTN에 낙하산 인사를 기용하며 수구꼴통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조중동과 쿵짝쿵짝 하는 모습은 치가 떨린다. 약자들을 위해 글을 남긴 누리꾼을 잡아들이는 모습에서 이제는 입닥치고 찌그러져 있으라는 전두환식 통치 스타일마저 보여준다.
노짱의 대통령 재임시절의 말을 빌려본다. 바로가기


혹자는 말한다.
'대통령 한 사람 바뀌었을 뿐인데...어떻게 나라가 이 지경이 될 수 있는가?'

MB정권의 철학의 부재가 불러온 2009년 대한민국의 모습은 향 후 남아있는 MB 임기동안 국민들은 어떻게 지내야 할지 걱정해야 하는 암울한 상황이다.
하루 속히 대한민국호가 풍랑속에서 헤쳐나와 평온한 바다를 항해하기 위해서는 현 정부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그에 걸맞는 행동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노무현 당신 때문에 행복했습니다
[동영상 출처] http://kr.youtube.com/watch?v=2VFH2lKwDps&feature=related








위의 아기와 함께한 노짱 이미지 [출처] 노무현의 사람사는 세상
그외 이미지 [출처] http://minihp.cyworld.com/24405832/230795228
위의 바로가기의 [출처] http://image.dcinside.com/data2/gallery/accident/2007/06/11/2039429219_12e304a7_EBB680EB8184EB9FACEC9AB4ECA484EC958CEC9584EC95BCECA78021.swf



[참고 url]
노무현 대선 후보 TV-CF
http://gongha.egloos.com/6039073

 

Posted by 공하™
Gongha2009. 5. 9. 18:29


오늘은 야동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한다.
그리고 야동하면 떠오르는 AV 스타도 거론해보고자 한다.

예전 엠블(엠파스 블로그)에는 글을 작성할 때 공개, 비공개 말고도 19세 이상만 볼 수 있도록 설정이 가능했는데 이 부분이 없어 아쉽다. 되도록 언어를 순화해서 누구든지 볼 수 있게끔 작성하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만 글을 쓰고자 하는 주제 자체가 19세 미만의 블로거들에게까지 읽힐 필요가 없는지라 이럴 때는 엠블이 그립다. 19세 미만의 블로거는 이 포스트에서 비켜서 주길 바란다.


남자들에게 있어 야동은 장난감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장난감을 좋아하는 여자들도 수없이 많다. 다만 드러내놓고 얘기하길 꺼려할 뿐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아직 우리 사회가 야동을 보는 것에 대해 관대한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부끄러워 하는 척 할 뿐 편한 이와 함께 있을 때는 은근히 밝히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필자 역시 여친을 위해 야동을 다운받아 놓은 적도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야동을 양키들이 쓰는 문자를 빌려 AV라고 말한다.
Adult Video의 약자로 성인 비디오를 의미하는데 AV 스타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스틸 사진으로 담으면서 동영상으로 촬영한 비디오도 넓은 의미의 AV에 포함된다 말하는 이도 있다. 그만큼 일반 대중들이 AV 스타들의 사생활도 일반 연예인의 사생활 못지 않은 관심을 갖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이 포스트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AV는 흔히들 말하는 야동을 의미한다.

이 야동을 처음 접하는 시기는 사람들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주변의 지인들과 얘기해보면 성적 호기심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사춘기 시절을 전후로 해서 처음 접했다는 이들이 다수를 형성하는 것을 보면 야동이 성적 환상에 있어 거쳐야 하는 일종의 신고식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야동하면 우리나라 사람 대다수는 일본의 AV를 떠올릴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피부색이나 생김새 또한 우리나라 사람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이웃나라 일본의 AV가 그나마 서양의 그것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나 만약 일본의 AV가 재미가 없다면???
당연히 소비자(?)로 부터 외면 받을 것이다. 하지만 기발한 발상의 스토리 라인이 뒷받침되는 일본의 AV인지라 우리나라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성 기구를 활용한 자위 내지는 성교를 포함한 성적 유희, 달리는 지하철 안이나 학교 교실 안 또는 병원 병실 등 일반적이라 할 수 있는 호텔이나 집안이 아닌 독특한 장소의 선택, 강간이나 윤간 등 사회통념상 법이 허락하지 않는 - 탈선과 불법 정도는 당연시 하는 - 스토리 라인, 여기에 남녀배우 어느 정도 봐줄만한 외모가 뒷받침 되어 보는 이들의 감각을 자극하는 비디오물을 만들어내는 일본의 내공은 도저히 국내 업계에서는 따라잡기 어려운 경지에 올라서있다고 생각이 들 정도이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이 야동 분야는 향후 50년이 지나도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해본다.

섬나라라는 특성 때문인지 이들은 상당히 개방적임과 동시에 자기들의 것을 지키는 것에도 노력하는 모습을 사회 전반에서 보여주곤 하는데 이 AV 분야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성과 관련된 사회분위기가 우리나라와는 분명 다르다. AV에 대해 너그러운 일본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일본인들이 AV만을 추구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혹자는 야동을 보는 이들을 변태라고 얘기한다.
필자는 이런 이들에게 자신있게 얘기해줄 수 있다.

야동은 섹스라는 인간의 본능을 드러내놓고 얘기할 뿐 나쁜 것은 아니다.
섹시한 것을 접한 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고자와 다를 바 없다.
당신 또한 당신이 좋아하는 이성 내지는 결혼생활을 함께 하고 있는 이성과 섹스를 즐기지 않는가?
이 섹스에 대한 얘기를 반드시 남몰래 숨어서만 해야 한다는 진리는 어디에도 없다.
당신은 야동을 보거나 얘기하는 것을 왠지 부도덕해보이는 행위라고 여길지 모르나 당신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섹스라는 인간의 본능에 대해 숨기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닌가?
너무 지나친 반응을 보이는 당신 혹, 친한 친구들과 만나면 이성과의 성교 때의 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부류는 아닌가?


물론 야동을 너무 밝히는 것은 정신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는 이러한 경우에도 해당될 것이다.


일본의 AV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우리나라에서 정상적이든 어둠의 경로를 통해서든 소비되는 AV물 역시 수없이 많다. 필자의 경우 돈 주고 사서 보거나 수집한 AV물은 단 한편도 없다.
야동은 그 특성상 남몰래 은밀하게 구해서 보는 것이 제 맛이지 않을까? 물론 결혼을 한 부부들 중 간혹 성인샵에 가서, 또는 인터넷 성인몰을 통해 AV물을 돈주고 구입하는 이들도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웹을 통해 AV물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이들이나 AV물을 구하는데 돈을 쓰지, 돈을 투자하지 않고도 구할 수 있는 방법적인 면을 안다면 과연 생돈을 들여가며 한번 보고 쳐박아 둘 AV물을 구입할까? 물론 정품 수집이 목적인 일부 부류도 있을 것이므로 이들은 논외로 친다. P2P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무료로 수십 편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야동에 출현하는 인물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한다.





 

Posted by 공하™
Study2009. 5. 8. 19:43

친한 형님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교육기관에 출퇴근하며 교육을 이수하고 있다는 얘길 들었다.
같은 교회 다니는 집사님이 운영하는 교육기관인데 자격증이 있는 남자직원이 필요한지라 형님께서 이 교육을 받고 그곳에 취업하기 위해 열심히 임하고 있다는 소릴 들었다.
주말이면 이 교회에서 떡을 이용하여 선교활동에 활용하는데 금요일에 형님이 직접 반죽을 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착한 일, 좋은 일 하는 형님과 대화를 나누며 마음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잘 풀리지 않던 형님의 생활이 조금이라도 잘 풀리길 바랍니다.


노인요양보호사...


우리나라도 이미 고령화 인구에 대한 대책이 시급한 상황에 이르렀다.
70~80년대 이후 빠르게 진행된 산업화로 인해 그 당시 산업의 일꾼이었던 분들이 이제는 자식들이나 국가로부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간에 요즘 부모님을 모시지 않는 자식들이 늘고 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 부모를 여행지에 버리는 일까지도 뉴스화되는 것을 보면서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우리나라에 대한 호칭도 이제는 옛말이 되어버린 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아흔이 넘으신 큰어머님도 요양보호시설(노인병원)에서 1년 넘게 생활하시다가 올 4월 초순에 세상과 이별을 고했다.
요양보호시설에서 생활하시기 이전에는 큰집 형들과 누님들 댁에 왔다갔다 하기도 하고 시골 집에서 생활도 하셨지만 정작 어느 한 곳에 거주하지는 못하셨다. 필자의 부모님 또한 훗날 그리는 안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음에 가슴 아프다.

어차피 의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고 핵가족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부모님을 모시고 살지 않는 자녀들이 많은 것을 인정한다면 노인문제에 대해 정부는 좀 더 실질적이고 진지한 접근을 통해 노인 복지정책을 펼쳐야 할 것이다.
情이 메말라버린 형식적인 시설에서 마지막 여생을 보내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프고, 할 일 없고, 말벗없어 외로운 어르신들에게 좀 더 따뜻한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 말벗이 되어줄 수 있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간병인·요양보호사 등 돌봄노동자 6명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회의실에서 좌담회를 열고 근무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박재찬기자

[출처] [불안한 노동, 흔들리는 삶](3)돌봄노동자 - 돌보다 병나는 노동자


행정학 교재의 내용을 빌리자면 조직 사회에서 부패가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는 자신이 일한 만큼의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패는 그가 속한 조직을 병들게 하고 나아가 사회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 부패는 반드시 조직에 몸담고 있을 때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의 댓가가 정당하다면 그에 비례하여 부패도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다.

노인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이들의 보수는 사회복지 관련 업무의 일환이다. 사회복지 관련 업무는 일만 힘들고 보수는 적다는 불만이 오래토록 지속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거나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을 보살피는 이들이 긍정적인 마인드로 자기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기 위해서는 분명 그에 상응하는 보수체계가 현실적이어야 가능할 것이다.
이는 보살핌을 받는 어르신들에게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고 부패 또한 줄어들게 만들 것이다.

법과 제도는 갖추어져 있으나 사회적 규범이나 가치관 등은 현실속에서 따라가지 못하는 괴리현상이 발생한다면 이는 넓은 의미에서 아노미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겉으로는 평온한 듯 보이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무질서하고 도덕규범이 없는 혼란의 상태, 이러한 아노미를 노인요양보호사들이 보이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말이 통하지 않는 치매 노인과 생활를 하면서 받게 되는 스트레스를 사람들이 볼 때는 아무렇지 않다는듯이 웃으며 넘기면서 치매 노인과 단 둘이 있을 때면 몰래 학대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장담을 그 누가 할 수 있겠는가?

노인요양보호사들을 양성함에 있어 철저하게 봉사정신에 입각한 교육이 필요하겠지만 이에 못지 않게 그네들의 실생활이 현실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가난하면 부패하기 쉽다는 말도 있다. 넉넉할지는 않을지라도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이들에게 적정한 보수를 지급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아직 이 제도가 시행된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시행착오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작년 우리나라에 필요한 요양보호사가 5만명이었는데 교육기관을 통해서 배출된 인원은 40만명이 넘었다고 하니 실업자 구제가 아니라 마음이 급한 실업자를 붙잡아두고 시간만 허비하는 제도가 되어버린 셈이다. 사회복지제도를 시장에 맡기니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정부로부터 보조금 받기 위해 교육기관을 설치하고 교육생을 모집한 과열경쟁이 초래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실제 직업으로 임하는 요양보호사들을 성추행 하는 노인분들도 계시다는 얘기를 종종 듣곤 한다.
중풍에 걸린 할머님을 위해 방문한 요양보호사를 할아버지가 성추행 한다든지 하는 일이 있다는 것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으신 분을 법에 맡겨 해결하라고만 하기에는 남겨진 할머님의 남은 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하고 생각하게 되다가도 그래도 이건 아닌데...하는 생각이 든다.
정신이 멀쩡한 할아버님이 몸을 가누지 못할 때 요양보호사의 보살핌을 받다가 성추행을 하게 된다면....?
이러한 부분 역시 정부와 관련기관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노인요양보호사와 관련한 정보들을 검색해봤다.
아래 웹상에서 발견한 기본적인 정보들을 몇 개 남겨본다.


 

Posted by 공하™
Blog2009. 5. 8. 16:53

안철수 연구소에서 선보인 보안위젯

위젯을 블로그에 설치하면 접속하고 있는 블로그 페이지가 안전한지 확인 가능하고 동시에 굿네이버스에 100원을 기부하는 일석이조의 위젯이다.
한번 쯤 설치하면 기분까지 좋아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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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하™
Digital/Source & sauce2009. 5. 8.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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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하™
Gongha2009. 5. 6. 23:13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패배하고도 제대로 각성하지 못해 MB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조차 챙기지 못하는 무능한 야당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현 시국이다.

지난 4·29 재보선의 경우, 인천 부평을에서 승리했다고 지도부는 웃고 있지만, 사실 인천 부평을 말고 다른 지역에서 제대로 맞붙을 자신이 있었을까? 민주당은 민주당의 실질적인 지지기반이었던 전북 전주시 덕진과 완산갑 두 지역에서 무소속의 정동영과 신건 후보에게 패배했다. 전주 덕진은 몰라도 완산갑은 민주당에서 확보했어야 하는 지역이었다.
특히나 전주 완산갑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이광철 후보의 경우 지난 제17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전주 완산을)이었음을 감안해보면 이 지역 민심이 민주당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냉철한 자기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뭐 어차피 정동영, 신건 후보가 나중에 민주당에 다시 들어올테니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정동영 복당과 관련하여 일이 제대로 안풀린다면 민주개혁세력의 분열도 가능한 시점이다.
MB 독주에 대한 민주당이 보여온 그 동안의 행보는 너무도 미흡했다.
물론 작년 연말 MB악법 연내 처리를 막겠다고 밤새워 국회의사당 농성을 한 것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 가득하다. 그러나 민주당은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국민들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촛불집회자를 연행해가는 현 정부에 대해 제대로 대처도 못하고 있고, 국민들은 민주당이 국민들을 지켜주지는 않는 집단이라는 확신 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 대리인이 대리인으로서의 제 역할을 못할 때 국민으로부터 버림받는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
왜 민주당이 지지율이 낮은 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볼 때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암울할 뿐이다.

정세균 대표체제가 출범하면서 민주당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의아한 구석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정부와 여당에 대한 뜨뜻미지근한 대응도 그러하고 서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 국회내 통과도 제대로 못시키는 무능한 야당으로 언제까지 국민들의 세금을 받아 챙길지...


오는 15일 민주당의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이종걸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다고 한다.
이종걸 의원이 원내대표에 당선되어 민주당을 이끈다면 국민으로부터 훨씬 사랑받는 정당으로 성장하리라 장담한다.

이종걸 의원이 반드시 원내대표로 당선되어 민주당을 이끌어야만 하는 당위성은 이미 충분하다.
많은 누리꾼들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다.
연출된 상황에 의한 것이 아닌 그의 평소의 마음가짐과 행동에서 비롯된 상황이라 믿어 의심치않는다.


우선 독립유공자 이회영 선생의 후손이라는 우월한 혈통이 친일세력에 질려버린 국민들에게 명분을 제공하기 충분하여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일조할 것이 확실하다.

우당 이회영 선생의 경우, 1905년 비밀결사조직인 신민회를 결성하여 활동했고 나라가 망한 1910년 12월에는 전 재산(현재 시가로 600억원)을 챙겨 59명의 일가족을 데리고 만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 양성에 힘을 쏟았다.

일제 36년간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이 꾸준히 지속될 수 있었던 기반이 바로 이회영 선생의 신흥무관학교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시간에 배운 봉오동 전투, 청산리 대첩과 같은 전투에서 대승을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신흥무관학교 출신의 독립군들 활약이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1920년대 이후 한국의 독립운동과 무정부주의에 대한 각종 논문이나 서적에 이회영 선생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신 이회영 선생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후손들의 역사에 귀감을 주기 충분하다. 조선시대 백사 이항복의 11대 후손, 8대를 걸쳐 판서를 배출한 명문가 집안의 이회영 선생, 그리고 그의 손자 이종걸 의원.

뼈속까지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는 지도층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 할 것이다.
오늘날도 신라시대의 골품제가 있다면 성골(내지는 진골)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몇 안되는 집안의 인물임에 틀림없다.


이종걸 의원은 다음 아고라에서도 이미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다.

지난 해 10월 24일, 문방위(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열렸는데 그 당시 국감에서는 특히 여야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주요 쟁점이 되었던 내용은 국정원이 정부와 한나라당의 언론 대책 회의 밀담에 연루되었다는 내용과 베이징 연예인 응원단의 혈세 낭비 추궁이었는데,



여야간 갈등이 심해지던 중 국정원의 국정 개입 논란을 제기하던 이종걸 의원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장관, 차관. 그리고 지금 줄줄이 기대하고 있는 공공기관 낙하산 대기자들. 지금 그들은 이명박의 휘하들입니다. 졸개들입니다."

이에 화가 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당시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던 기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격한 발언을 한다.
"사진 찍지마. 씨.. 찍지 마. 씨.. 성질 뻗쳐서 정말. 찍지 마."

이 때 이후로 다음 아고라에서는 이종걸 의원이 '국민들 속 시원하게 해주는 의원이다', '포스트 노무현이다' 라는 글들이 올라왔고 필자 또한 이 때 이후로 이종걸 의원이 대선에 출마하면 무조건 나의 한표를 기꺼에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3월 3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이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목을 잡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이 사진을 보고 또 한번 많은 누리꾼들에게 독립유공자의 후손이 대접받지 못하고 아직도 박해를 받아야 하느냐고 원통해하며 친일수구세력이 가장 많이 모인 한나라당 의원에게 멱살을 잡혔다는 현실에 울분을 토해내는 이들이 많았다.
그 당시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함부로 대했다는 누리꾼들의 꾸짖음이 아고라를 도배했었다. 또한 이종걸 의원을 우리가 지켜줘야 한다는 글이 등장하며 누리꾼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지난 4월 6일 국회 대정부 질문 때에는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해서도 모든 언론에서 쉬쉬하고 있을 때, 이종걸 의원은 면책특권을 적극 활용 '유력 언론사의 O사장'을 거명했다. 사실 훨씬 이전부터 특정 사주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통쾌한 마음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아고라를 찾는 수 많은 누리꾼들 역시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 가능했다.

이후 누리꾼들에게 이종걸 의원에게 쏠리는 관심은 더욱 증폭되었고 '할 말은 하는 의원'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그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꼭 승리하여 어설픈 야당이 아닌 서민을 위한 뚜렷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해주는 선명 야당의 원내대표가 되어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이미지 출처]
우당 이회영 영정 : http://blog.daum.net/tcvsyesdr/1756781
국정감사 이미지 : http://pds99.cafe.daum.net/image/3/cafe/2008/10/29/19/51/4908402660610
한선교 의원과 함께 : http://file.agora.media.daum.net/pcp_download.php?fhandle=Sjc3VUBmaWxlLmFnb3JhLm1lZGlhLmRhdW0ubmV0Oi9LMTUwLzQvNDU4LmpwZw==&filename=이종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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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ngha2009. 5. 6. 17:04


법과 원칙을 입에 달고 집권하는 현 정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부도덕하기에 '대통령 후보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주장은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구호아래 수면 아래로 고꾸라지고 남들 다 하니까 나도 주식, 펀드, 부동산에 투자한다며 뛰어든 수 많은 국민들의 이기심의 발로로 현 정부는 탄생했다.
기업 CEO 출신이니까 우리나라의 힘든 경제상황도 잘 극복하여 국민 3만불 시대를 열것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헛된 구호를 많은 국민들은 공유했다. 조금이라도 이명박 후보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노력했다면 그를 성공한 CEO라고 칭하지는 않을 것이다.
747이라는 공약은 이러한 부에 대해 집착했던 국민들에게 절묘라게 잘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서 시작된 세계 경제 위기속에서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대한민국은 한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이명박을 지지하는 이들은 말했다.
'이게 어디 이명박 대통령이 잘못해서 생긴 경제 위기상황인가?', '세계적으로 다 힘든 상황이지 우리나라만 힘든가?'
맞는 말이라고 착각하는 이들과는 더 이상 대화하길 포기해버렸다.
그네들은 평생 그렇게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길 바라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보를 흘리는 이들의 감언이설에 놀아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세계적으로 다 힘들고 우리나라 대통령이 잘못해서 경제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라는 말은 일견 맞는 부분도 분명 있다.
하지만 망망대해에 여러 국가라는 선박들이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고 있는데 지난 번의 선장이 선박 운행을 책임질 때보다 더 심한 폭풍우가 몰아쳐 선박들이 휘청거리고 있는데 우리가 타고 있는 배만 휘청거리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현명한 리더는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제대로 된 대처를 하고 함께 타고 있는 이들의 안전을 챙기는 것이 임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지금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왔는가?
국민 다수를 똑똑하게 만들어주는 행정서비스로 인해 많은 국민들은 정치, 경제, 외교를 비롯한 여러 영역에 대해 열공해야만 했고, 국민들이 원하지 않더라도 사소한 거짓이나 부정, 부패 정도는 용인해줘도 괜찮다는 인식을 국민 모두에게 심어주었다.
'MB정부 2년차… '2차' 가는 공무원'이라는 기사를 빌리지 않더라도 그 예는 숱하게 찾을 수 있다.
법과 원칙은 정권에 협력하는 인사들에 대해서도 비켜가면 안되지만 우리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환율 가지고 말장난하며 대기업들을 위해서만 힘썼던 강만수로 대표되는 'MB인사'의 명줄이 예상외로 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부의 이러한 국민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행정서비스로 인해 국민들은 현업에 종사하면서 열공하는 것 말고도 새벽까지 도로위로 집결하게 만들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 상황에서 법과 원칙을 얘기한다.
공권력에 도전하면 닭장차가 대기하고 있다가 곧바로 잡아넣는다고 엄포를 놓고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국민들을 협박한다.

'촛불진압'에 이어 '반인권법' 강행방침이라는 신문 기사를 빌리지 않더라도 현 정부는 국민들에게 너무도 스트레스를 많이 주고 있다. 그리고 '지칠대로 지치면 너희들이 뭐 별 수 있겠어?' 라는 식의 대응을 하고 있다.


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1人이다.
그의 대선 후보 경선 시절부터 단일화에 성공하여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의 대선 승리를 위해 나름 노력했다.
그의 철학이나 도덕적인 가치,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의지, 남과 북의 우호 속에 세계로 향하는 경제정책까지...
그의 공약이나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실시한 각종 정책들은 미흡한 면도 없지 않지만 분명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고 자신한다.
우리가 언제 대통령에 대해 이름 석자만 부를 수 있었는가?
우리가 언제 대통령을 함부로 욕할 수 있었는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성장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이 크다고 생각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노무현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정부의 행정서비스에 대해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면서 정치와는 조금 거리를 두는 생활을 견지했다는 것이다. 현 정부와 너무도 대조되는 부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소환과 조사에 대해서는 불만도 있지만 '죄가 있으면 죄값은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기에 그 어떤 이라도 당연히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우습지도 않게 억지로 짜맞추려는 검찰의 태도이다.
하지만 소환조사가 끝난 마당에 왈가왈부 하지는 않고 싶다.
이제 재판을 기다린다.

오늘자 쿠키뉴스의 기사([단독] 박연차 “盧에 준 돈 대가성 없었다”…檢 포괄적 뇌물죄 적용에 난관 예상)에 의하면 재판과정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받은 돈의 성격이 뇌물이라고 판시하기 쉽지 않아보인다.

만약 사법부에서 검찰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포괄적 뇌물죄 적용에 대해 기각 판결을 내린다면...
검찰을 비롯한 현 정부에 커다란 상처를 안기는 꼴이 될 것이다.
인용 판결을 내린다 할지라도 국민들의 저항 또한 불을 보듯 뻔하다.

이래 저래 이제는 전진도 후진도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린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쿠키뉴스의 박연차 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준 돈은 대가성이 없었다는 뉴스 기사는 검찰이나 청와대 그리고 모든 국민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재판과정을 지켜볼 일이다.

Posted by 공하™
Digital/Fun2009. 5. 6. 01:52

이시영과 뱅키스 그리고 광고에 대한 얘기를 생각나는대로 적어본다.


가상 결혼이라는 컨셉의 MBC 일밤의 '우리 결혼했어요'에 부부로 출연했던 전진과 이시영
사실 이시영이라는 인물에 대해 우결에서 처음 본지라 그녀에 대해 무척 궁금했다.
이쁜 얼굴과 축복받은 바디라인에 춤도 잘추고 진짜 남친이라면 애간장 좀 끓을 듯 하다.

최근에 그녀가 TV-CF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주식과 펀드를 한꺼번에 해결한다는 온라인 투자 광고 뱅키스
새침한 그녀의 외모만큼이나 썩 잘 어울리는 광고였던지라 볼 때마다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지어진다.

작년 하반기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금융위기의 여진이 아직 남아있음을 볼 때,
아고라 경방 고수들의 글을 빌리지 않더라도 여기저기에서 각종 정보를 접하는 많은 개미들은 주식투자에서 발을 뺀지 꽤 오래 된 듯 하다.
하지만 3월, 4월 그리고 5월 초순...
주가는 다시 오르고 있고 개미들은 주식시장으로 몰리고 있다는 뉴스 보도가 있었다.
바닥을 쳤다는 말을 믿지는 않으나 현상황에 대해서 만큼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쁘다.
IMF에서는 2014년까지도 대한민국의 2만달러 소득이 불가능하다는 전망을 내놓았다는데 하루 속이 우리 경제가 다시 되살아나기를 희망해본다.

얼마 전에 국채에 투자하는 MMF에 하나 가입했는데...
뱅키스 광고를 보면서 온라인을 통한 투자에도 눈을 돌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좀 검색해서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이 또한 이시영이라는 광고 모델이 던지는 눈웃음에 살짝 넘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의 꽃이라 불리는 광고에  넘어가는 소비자가 어디 필자 한 사람 뿐이겠는가 ^^;;


그리고 광고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좀 생각해봤다.
요즘에 TV-CF 광고 영상에도 저작권을 운운하는 곳이 있음에 놀랐다.
평소 광고에 관심이 많은지라 개인 블로그에 기업에서 판매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와 관련된 광고물을 올리는 것은 해당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해주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오히려 광고물을 더 많이 퍼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오던 필자인지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에 대학에서도 지금의 이러한 나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게 배운 것 같다.
물론 동영상을 비롯한 광고물을 나 개인적인 상업적 용도로 활용한다면 이는 광고물을 스크랩하는 입장에서 부도덕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광고를 보면서 '카피가 좋네', '아이디어가 죽이는데!', '비주얼 끝내주는구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영상이다', '카메라 구도 예술이네 ^^', 등등등...
이러한 생각들을 하면서 잘 만들어진 광고물을 블로그에 올리는 것은 광고에 대한 호기심 내지 취미활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인쇄매체를 비롯한 여타의 다른 매체에서 접하는 광고도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개인 블로그에 광고물을 올린다고 하여 그 광고물을 기획하고 제작하여 집행하는 과정에 관계되는 이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확신한다. 많은 기업에서 아직도 자사 홈페이지에 홍보 내지는 광고 관련 메뉴에서 그네들의 광고물을 다운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모든 기업에서 이와 같이 광고물을 다운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음 하는 바람이 있다.

오늘 우연찮게 접한 뱅키스 광고...
이 광고물을 다운로드 할 수 있게 허락하며 개인 블로그에 올리기를 희망하는 한국투자증권의 홍보 전략을 보면서 역시 인터넷을 통한 제품 판매에 있어 인터넷을 통한 홍보만큼 중요한 것이 없음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이들이 이 광고 집행과 관련되어 있을 것임을 짐작하게 된다.

광고물을 마음 편히 퍼갈 수 있도록 해준 한국투자증권의 뱅키스 대박나길 기원한다.

온라인주식투자 최저수수료로 하는 방법


[동영상 출처] http://event.gmarket.co.kr/html_new/200904/090415_bankis/download.asp

 



광고 영상물 [다운로드]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64F1F1D4A0136EF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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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하™
Gongha2009. 5. 2. 16:00

지난 4월 30일
417회 MBC 100분토론 연속 기획 “한국사회 진단과 미래논쟁” [1편] 보수가 말하는 한국보수의 진로!에 패널로 참여한 전원책 변호사

필자는 이러한 부류의 인물을 좋아한다.
분명 필자와 일정한 영역에서는 의견 불일치는 있다. 인정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합리적인 인사가 많았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우리 한국 사회에서 진정한 보수에 대한 논쟁에 전원책 변호사를 선택하는 것에 말꼬리를 잡을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의 논리는 강준만, 유시민, 진중권과 같은 중도 내지는 진보를 추구하는 스타 논객에 견주에 결코 뒤지지 않으며,
상대에 대한 배려만큼은 단연 최고라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케케묵은 이념 논쟁이 한창이다.
혹자는 노무현 정권 탄생이후 우리 사회 이념 논쟁이 불붙었다고 말하곤 한다.
일정부분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이러한 좌우,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 논쟁에서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인 사고를 견지하면서 나만 혹은 내가 소속된 이념집단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전원책 변호사의 뉴라이트에 대한 통쾌한 비판은 진보를 지향하는 필자에게는 감사하기까지 했다.
전원책 변호사를 검색하다가 발견한 토론 어록을 편집한 동영상과 관련 기사가 있어 이곳에 담아본다.

KBS 심야토론 '군복무 가산점제 다시 살려야 하나? (2007-07-01)'

[출처] http://video.cyworld.com/206846345


관련기사 : 진중권과 약속지킨 전원책 "역시 전거성"

Posted by 공하™
Gongha2009. 5. 1. 01:57

뉴스후를 보며 우리나라의 권력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얻었다.

한마디로 축약한다면 '우리나라의 살아있는 권력은 개다'

김모씨는 충분히 국내로 잡아들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일부러 잡아들이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의 유력인사에 대한 보호라는 현실적인 문제만을 고려하는 경찰의 무력함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A라는 사건을 B라는 사건을 이슈화하여 막고, 그 B 사건을 또다른 C 사건을 터뜨려 막는 상황의 연출 속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전혀 찾아보기 힘든 사회를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태그스토리에서 화면캡쳐한 이미지를 하나 올려본다.
뉴스후를 본 사람이라면 이 화면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화면캡쳐] http://www.tagstory.com/video/video_post.aspx?media_id=V000241618&feed=EP


故 장자연님...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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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하™